감정적으로 일 처리하면 실수하기 쉽다?

부모님의 잔소리와 간섭이 싫어 독립하고 싶다는 어느 대학생의 고민에 대해 즉문즉답으로 유명한 어느 스님은 이렇게 답하셨다. 만일 네가 독립해서 살면서 드는 경제적인 비용을 생각해 보라. 알바해서 30만 원을 벌기 위해 너는 하루 2시간씩, 30일을 일해야 한다. 게다가 네가 할 수 있는 알바는 식당이나 커피숍과 같이 다른 사람 시중드는 일이 대부분이다. 가끔 진상 손님을 맞을 수도 있다. 그런데 네가 하루 한 시간씩, 부모님의 비유를 맞춰주기를 알바로 한다면 시간도 절약되고 효도도 할 수 있다고.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맞는 말이다. 진상고객들에게 ‘부림’을 당하는 것 보다는 부모가 하는 말을 잘 ‘들어주기’만 하면 되니까. 집 나가 ‘개고생’을 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 한 구석은 뭔가 찜찜하다. 맞는 말이지만, 이미 감정이 많이 상했는데 그게 잘 될까?

　

정서가 오작동하면 사소한 결정조차 못해

　

　우리의 행동을 결정짓는 것은 무엇일까? 합리적인, 이성적인, 논리적인 기준에 따라 결정하는가. 아니면 좋은 게 좋은 거라고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결정하는가. 누군가는 우리의 행동을 결정하는 것은 ‘감정’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이성’의 범주에 속한 많은 이론과 도덕적 의무, 합리성과 논리성 등등은 단지 이 ‘감정’에 따른 결정을 ‘잘 꾸며주기 위한 변명’에 불과할 뿐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합리적인 결정으로 기분이 좋아진 것이 아니라, 좋은 기분에 대한 합리적인 구실 대기 같은 거 말이다.

　나는 쇼핑할 때 어느 것을 살까? 몇 시간씩 심사숙고해서 산 물건보다 ‘꽂혀서’산 물건을 더 자주 입고, 잘 쓴다. 오히려 결정에 오랜 시간을 들인 것은 후회하고 환불하고 싶다. 이성적인 설명은 못하겠지만 정서에 의해 무언가 ‘당겨서’ 산 물건들은 만족감을 주고 후회를 덜 한다. 결정의 순간 나의 ‘마음에 끌리는’것이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우리는 ‘감정’적이 되는 것에 대해 오랜 동안 부정적인 것으로 여겨왔다. 특히 인간이 저지르는 실수나 오류들을 감정의 탓으로 여겨 ‘감정적으로 일을 처리하니 실수’를 하게 되고 ‘나한테 무슨 감정’있냐며 시비를 붙이기도 한다. 가장 억울한 말은 ‘감정적으로 대처’해서 일을 어렵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성에 의한 판단과 행동이 더 합리적이니까.

　하지만, 결정의 순간에는 ‘정서’가 중요하다. 이는 정서를 담당하는 뇌 부위를 손상 입은 사람들의 증상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들은 뇌에서 논리와 이성을 담당하고 있는 뇌영역이 상대적으로 덜 손상 받았기 때문에 수학, 퍼즐, 논리 문제 등은 부상을 입기 이전과 비슷한 수준으로 풀어 낸다. 그러나 아주 사소한 결정조차도 하지 못하는 ‘불행한’ 장애를 가지게 된다. 출근길에 ‘무슨 옷을 입을까’, ‘오늘 점심에 무엇을 먹을까’, ‘누굴 만날까’등과 같은 사소한 일부터 ‘다음 분기 어떤 사업을 추진할까’, ‘어떤 기획 안을 선택할까’와 같은 자신의 업무와 관련된 결정에 이르기까지 도무지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우리는 출근길에 어떤 옷을 입을지 몰라 옷장 앞에 서 있는 사람을 상상하기 어렵다. 왜냐면 별다른 생각 없이 자동적이고 자연스럽게 일어나서 ‘결정’하고 있다는 걸 알아채지 못하니까.

한 번 ‘빈정상한’ 사람과 쉽게 다시 친해질 수 없는 이유는 명쾌하다. 그를 보면서 느껴지는 불쾌한 감정 때문이다. 이 불쾌를 ‘쾌’로 바꿀 수만 있다면 우리는 누구와 아웅다웅 다툴 일이 없을지 모르겠다.



우동과 콩물국수, 점심 메뉴 결정하기

　처음 대학생의 질문으로 돌아가자. 스님 주신 답이 이성과 논리에 맞는 말이지만, 감정을 무시했다는 면에서 그 답에 전적으로 동의하기는 어렵다. 만일 그 대학생이 부모님의 ‘말 들어주기’를 한 후 보람이나 의미,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면 부모님을 상대로 한 알바를 선택할 것이다. 그러나 부모님 ‘말 들어주기’ 알바가 자신에 대한 저평가나 간섭으로 돌아온다고 생각되면 집에서 알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니 오늘 점심에 ‘우동과 콩물국수’중에 어느 것을 먹을지 결정하지 못했다면, 우동 혹은 콩물국수를 먹고 나서 어떤 것이 더 큰 기쁨(혹은 포만감)을 줄지를 상상해 보면…쉽다!

조현미 <심리상담사>

[출처 = http://www.gjdream.com/v2/column/view.html?news_type=515&uid=474944 ]